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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4 vs r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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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208첫째,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부담이었다. 당시 루이나는 리처드 에반스 대통령을 정점으로 한 합법 정부 체제가 유지되고 있었으나, 대통령 자신이 이미 노던 소사이어티 측에 사실상 연금 상태로 묶여 있었다. 진압군 지도부는 대통령이 자유롭게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무력 진압을 강행할 경우, 훗날 자신들이 “반란을 진압한 합법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 승인 없이 군 내부에서 또 다른 반란을 일으킨 집단”으로 규정될 수 있다는 정치적 두려움에 시달렸다. 특히 국방장관까지 파브르 측에 의해 생포된 뒤에는, 명령 체계상으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뒷받침할 문서적·제도적 근거조차 부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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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둘째, 군 내부의 균열은 치명적이었다. 루이나군의 수도권 전력 상당수가 이미 노던 소사이어티 인맥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으며, 이는 곧 진압군이 전개할 수 있는 병력의 절대적 열세로 이어졌다. 표면적으로는 편제상 수만 명의 병력이 있었지만, 그 중 상당수는 여단장·연대장 등 지휘관들이 소사이어티와 내통하고 있었기에 사실상 신뢰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진압군이 만약 무리하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면, 전선에서 반란군과 교전하기는커녕 내부 배신으로 전열이 무너질 위험이 컸다. 실제로 장태완 예하 부대가 전차 공격을 준비하던 순간조차, 일부 기갑 부대에서 이미 “사령관을 사살하라”는 무전이 내려오고 있었다는 점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10둘째, 군 내부의 균열은 치명적이었다. 루이나군의 수도권 전력 상당수가 이미 노던 소사이어티 인맥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으며, 이는 곧 진압군이 전개할 수 있는 병력의 절대적 열세로 이어졌다. 표면적으로는 편제상 수만 명의 병력이 있었지만, 그 중 상당수는 여단장·연대장 등 지휘관들이 소사이어티와 내통하고 있었기에 사실상 신뢰할 수 없는 전력이었다. 진압군이 만약 무리하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면, 전선에서 반란군과 교전하기는커녕 내부 배신으로 전열이 무너질 위험이 컸다. 실제로 수경사 예하 부대가 전차 공격을 준비하던 순간조차, 일부 기갑 부대에서 이미 “사령관을 사살하라”는 무전이 내려오고 있었다는 점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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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212셋째, 외부 위협도 무시할 수 없었다. 동부 국경에서는 콘스탄티노폴과의 긴장이 상존하고 있었는데, 반란군 진압을 위해 수도권의 주력 병력을 모두 투입한다면 국경 방어에 공백이 생길 수 있었다. 진압군 수뇌부는 혹여 이 틈을 타 콘스탄티노폴이 월경을 시도한다면 국가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따라서 “내부 반란을 신속히 진압해야 한다”는 당위와 동시에 “국경 방위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모순된 명제가 병존하면서, 적극적인 전면 충돌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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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넷째, 시간에 대한 오판도 주저의 이유였다. 당시 많은 진압군 간부들은 반란군의 돌출 행동이 단기간 내에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 리처드 에반스 대통령이 끝내 재가를 거부하거나, 주둔 미군을 포함한 미연합사가 빠르게 개입한다면 파브르 측의 반란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따라서 굳이 대규모 유혈 충돌을 일으켜 “군 내부에서 국군끼리 전쟁을 벌이는 참극”을 만들기보다는, 시간을 벌고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결과적으로 반란군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결정적 실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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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마지막으로, 사회적 여론과 정통성 문제도 존재했다. 당시 루이나 사회는 이미 군부의 정치 개입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수도권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극도로 우려했다. 진압군 지도부는 혹여 전차와 포병을 투입하여 보안사령부나 수도 주요 시설을 공격한다면, 군의 명분은커녕 국민 여론까지 등을 돌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장태완을 비롯한 강경파의 무력 진압 주장은 참모회의 단계에서 거듭 제동이 걸렸고, 결국 결정적인 순간마다 주저와 망설임이 반복되었다.
214넷째, 시간에 대한 오판도 주저의 이유였다. 당시 많은 진압군 간부들은 반란군의 돌출 행동이 단기간 내에 스스로 무너질 것이라는 안일한 판단을 가지고 있었다. 리처드 에반스 대통령이 끝내 재가를 거부하거나, 주둔 미군을 포함한 미연합사가 빠르게 개입한다면 파브르 측의 반란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따라서 굳이 대규모 유혈 충돌을 일으켜 “군 내부에서 국군끼리 전쟁을 벌이는 참극”을 만들기보다는, 시간을 벌고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결과적으로 반란군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결정적 실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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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마지막으로, 사회적 여론과 정통성 문제도 존재했다. 당시 루이나 사회는 이미 군부의 정치 개입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으며, 수도권 도심 한복판에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극도로 우려했다. 진압군 지도부는 혹여 전차와 포병을 투입하여 보안사령부나 수도 주요 시설을 공격한다면, 군의 명분은커녕 국민 여론까지 등을 돌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수경사령관을 비롯한 강경파의 무력 진압 주장은 참모회의 단계에서 거듭 제동이 걸렸고, 결국 결정적인 순간마다 주저와 망설임이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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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218이와 같은 이유들이 겹쳐, 진압군은 끝내 전면전을 피하고 제한적 대응만을 반복하다가 결국 반란군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결과적으로는 “내전 방지”라는 명분을 지키려다, 반란군에게 합법적 권력까지 내주는 아이러니한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219219== 사후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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